윈저성

Wind shore(꼬불꼬불한 물가)…英 왕실 900년 역사를 가로지르다

[국방일보 기획칼럼 -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

<16> 영국의 윈저성

Wind shore(꼬불꼬불한 물가)…英 왕실 900년 역사를 가로지르다

11C부터 재건·증축, 19C초 현재 모습 완성
남작전쟁·백년전쟁·워털루 전쟁… 英 전쟁사 배경 
1차·2차 세계대전 피해받지 않아...영국왕실 공식 주거지

영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헌법에 따라 형식상 나라를 통치하는 왕실이 존재한다. 현재처럼 여왕 또는 국왕이 행정·사법·입법부, 국교회의 수장이면서 군대의 최고사령관이다. 런던에서 약 35㎞ 떨어진 버크셔주에 있는 윈저성(Windsor Castle)은 버킹엄 궁전, 홀리루드 궁전과 함께 영국 왕실의 공식 주거지 중 한 곳이다.

윈저성은 11세기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처음 요새로 세운 후 여러 번의 재건·증축을 거쳐 현재까지 90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영국 왕실의 이름이 된 ‘윈저’는 이 성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전쟁과 연관이 깊다. 윈저 왕가는 조지 5세 이후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을 배출했다. 윈저성은 오늘날까지 사람이 사는 가장 오래되고 큰 성이다.

1070년 정복왕 윌리엄 목조 요새로 시작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인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침공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템스강 남단을 수호하기 위해 지은 것이 런던탑이라면 런던으로 향하는 서쪽을 지키기 위해 1070년 목재로 지은 요새가 윈저성이다. 1170년대 헨리 2세는 둥근 탑을 비롯해 성 전체를 석조로 개축했다. 13세기에 헨리 3세가 서쪽 방벽을 완공했다.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9세기 초 조지 4세 때다. 성채 바닥 면적은 4만4965㎡이며 성벽의 최대 두께는 4m이다.

런던에서 템스강을 따라 배를 타고 윈저로 들어오는 길이 마치 ‘꼬불꼬불한 물가 같다(Wind shore)’고 해서 ‘윈저’라고 불렸다. 윈저성은 헨리 1세 때부터 궁전으로 사용됐는데 이 성은 둥근 탑, 세인트 조지 성당, 스테이트 아파트먼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윈저성 어디에서나 보이는 둥근 탑은 윌리엄 1세 때 목조로 지어졌다. 헨리 2세가 석조로 개축했고 조지 4세는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높이를 높였다.

1216년 1차 남작전쟁 때 포위 견뎌

윈저성은 영국 전쟁사의 주요 배경이 됐다. 존왕(1166~1216)은 1199년 4월 6일 친형인 리처드 1세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는 1205년까지 선대 왕들이 확보해 놓은 노르망디를 포함한 프랑스 내 영국 영토를 거의 잃어 실지왕(失地王, John Lackland)으로도 불린다. 존왕이 1206년부터 프랑스와 전쟁의 자금 조달을 위해 과도하게 세금을 매기자 영주들의 불만이 쌓여 갔다.

존왕은 영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나서 1214년 7월 27일 부빈 전투에서 프랑스 필리프 2세에 참패했다. 존왕이 귀국하자 영주들은 1215년 봄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시민의 도움으로 런던을 손쉽게 점령했고 왕은 결국 굴복했다. 1215년 6월 15일 존왕은 윈저성 근처인 러니미드에서 영국 헌법의 토대가 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에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도 존왕은 굴복하지 않고 귀족과의 내전을 준비했다. 이에 귀족들은 필리프 2세의 아들인 루이 왕자를 왕위 계승권을 가진 인물로 추대해 1차 남작전쟁(1215~1217)이 벌어졌다. 이때 윈저성은 두 달에 걸친 루이와 반란군의 포위 공격을 막아냈다. 존이 1216년 10월 병사한 후, 1217년 킹스턴에서 평화조약을 맺으며 1차 남작전쟁은 종결됐다.

백년전쟁 때 가터 기사단의 본거지

백년전쟁(1337~1453)은 영국과 프랑스가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하며 116년 동안 단속적으로 벌인 전쟁이다. 에드워드 3세(1312~1377)는 백년전쟁 초기인 1348년 윈저성을 본거지로 가터 기사단을 결성해 세인트 조지 성당을 지었는데 현재는 영국 최고의 훈장인 가터 훈장을 수여하는 장소가 됐다. 백년전쟁 중 윈저성은 감옥으로 쓰이며 많은 포로를 수감했다.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장 2세는 영국에 결정적 승리를 안겨준 전투 중 하나인 푸아티에 전투(1356)에서 대패하면서 윈저성에 갇혔다. 귀족과 상류층 포로에 대한 보상 비용은 성 증축에 쓰였다.

윈저성은 찰스 1세를 지지하는 왕당파와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 간의 영국 내전(1642~1651)에도 휘말렸다. 이 전쟁 동안 성은 1642년 의회파의 존 벤 의원에 의해 점령됐다. 1651년 9월 3일 우스터 전투로 내전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다. 윈저성에 갇혔던 찰스 1세는 처형됐고 찰스 2세는 추방됐다. 의회파는 1653년 크롬웰을 호국경(護國卿·Lord Protector, 영국에서 왕을 대신하는 직책으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섭정 귀족에게 붙이던 호칭)으로 선출했다. 1660년 멍크의 왕정 복고로 즉위한 찰스 2세는 윈저성의 많은 부분을 프랑스에서 배워온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했다.

조지 4세는 프랑스 나폴레옹과의 워털루 전쟁(1815)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20년 토머스 로런스로부터 위임받은 초상화를 모아 윈저성에 워털루 체임버(실)를 만들었다. 워털루 전투에서 공헌한 ‘웰링턴 공작’ 작위를 받은 아서 웰즐리를 비롯한 여러 군인, 정치가들의 초상화가 걸렸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 왕실 ‘윈저’로 개명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독일계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앨버트 공과 혼인했다. 에드워드 7세는 아버지의 성을 따른 첫 군주가 됐다. 부왕에 이어 조지 5세(1865~1936)가 왕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1859~1941)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인 빅토리아 공주의 아들이었다. 빌헬름 2세와 조지 5세는 고종사촌 사이였다. 1차 대전을 겪으며 영국 국민이 독일에 큰 반감을 갖자 조지 5세는 독일계 왕가 명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개명 필요성을 느꼈고 1917년 7월 17일 영국 왕실의 오랜 궁인 윈저에서 착안해 왕가 이름을 ‘윈저’로 개명했다.

1차 대전 동안 영국 왕실은 버킹엄 궁에서 이곳으로 대피했다. 이어진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대대적인 대공습 때도 윈저성은 단 한 번도 폭격당하지 않았다. 대신 히틀러가 윈저성을 작전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폭격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어린 엘리자베스 2세(1926~)는 동생 마거릿 로즈 공주와 함께 윈저성으로 피신했다. 안전을 위해 창문을 검게 그을리고 샹들리에를 제거해 내부를 볼 수 없게 했다. 2차 대전을 무사히 견뎠지만, 윈저성은 1992년 대화재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1997년 복원됐다.

오늘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평일엔 버킹엄 궁전에서 집무하고 주말 대부분은 유년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는 윈저성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영국 국기가 걸리고 여왕이 있을 때는 왕실의 기로 바뀐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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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국방일보 2019년 10월 14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91014/1/BBSMSTR_000000100082/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