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과 예술 4편

4편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

AI에 의한 소설 창작 프로젝트

이상미가 전하는 '4차산업과 예술'

컴퓨터가 소설 쓰는 날 원문 일부

“그 날은 공교롭게도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일상 업무에 몰두하는 형태로 앞으로 5년간의 경기 예상과 세수입 예상. 그 다음은 총리로부터 의뢰받은 시정방침 연설의 원고 작성. 어쨌든 멋지게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엉뚱한 요구가 남발돼 조금 장난도 쳤다.
 
이후 재무부로부터 의뢰받은 국립대학 해체의 시나리오 작성. 조금씩 빈 시간에 이번 G1 레이스의 승리마 예상. 오후부터는 대규모 연습을 이어가는 중국군의 움직임과 의도의 추정. 30개 가까운 시나리오를 상세히 검토하고 자위대 전력 재배치를 제안한다. 저번에 주문받은 최고 재판소의 주문도 대답해야 한다.”

일본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의 일부입니다. 일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은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입니다. A4 용지 3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로 2016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한 일본의 호시 신이치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일본 공립 하코다테 미래대 마쓰바라 진 교수팀은 2012년 ‘AI 소설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일본 SF소설가 호시 신이치의 소설 1천여 편을 학습했습니다. 연구팀은 인공지능 프로젝트팀이 여러 단어 구성과 등장인물 성별 등을 사전에 설정해 놓은 상태에서 ‘언제’, ‘어떤 날씨에’, ‘무엇을 하고 있다’ 같은 6하 원칙의 요소를 포함하게 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이에 맞은 단어로 문장을 만듭니다. 

사실 아직은 인공지능 스스로 이야기까지 만들어낼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방향과 흐름 등 80% 정도는 사람의 손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의미 있는 문장을 이어 단편소설을 완성한 자체가 큰 성과라는 게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상황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미 언론사에서는 증권 기사를 작성하는 로봇 기자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넘어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었던 소설이나 시 같은 글쓰기에도 결국 인공지능이 도달했습니다.

인공지능 ‘샤오이스’의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뚫고’

중국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시집이 출판됐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4년 중국에서 ‘샤오이스’(Xiaoice)를 개발했습니다. 인공지능 시인 샤오이스는 1920년대 이후 중국 시인 519명의 시를 공부했습니다. 1만 편이 넘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중 139편을 골라 2017년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Sunshine Misses Windows)를 펴냈습니다. 제목은 샤오이스가 직접 지었습니다. 시집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고독, 기대, 기쁨 등 사람의 감정이 담아있습니다. 

샤오이스는 몇 장의 베이징 사진을 보더니 'AI 베이징' 노래를 작사해 내기도 했습니다.  


구름에 서서, 
아름다운 도시를 보니, 
휘황찬란한 문화와 역사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네. 
오늘의 변화를 느끼니 
내일은 한 편의 시와 같아라. 
인류의 함성을 들어보라. 
AI 베이징을 사랑하네.


샤오이스가 지었다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사람이 창작했다고 믿을 만 합니다. 샤오이스는 '두뇌'에서 이미 가사를 창조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소스'만 제공해주면 순식간에 한 편의 노래에 대한 작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18년 통신사 KT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쓴 소설을 모집하는 ‘인공지능소설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최우수상에 상금 3000만원, 우수상에 2000만원이 걸린 이 공모전에 개인과 스타트업을 포함해 총 31개팀이 참가했습니다.

공포 이야기를 만드는 프로그램 ‘셸리'의 트위터

인공지능 작가는 소설과 시를 넘어 영화 시나리오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2016년 4월 열린 사이파이 런던 영화 페스티벌에 ‘썬 스프링’(Sun Spring)이라는 8분가량의 단편영화가 상영됐습니다. 인공지능이 쓴 시나리오로 만든 최초의 영화입니다. 컴퓨터 공학자인 로스 굿윈과 영화 감독 오스카 샤프가 개발한 인공지능 ‘벤자민’(Benjamin)이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벤자민은 1980~1990년대 SF영화와 TV 프로그램 각본으로 학습했습니다.

미국에서는 2017년 MIT 공대의 프로그래머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공포 이야기를 만드는 프로그램 ‘셸리’(Shelley)를 공개했습니다.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에서 이름을 차용했습니다. 셸리는 인터넷에 떠도는 공포 괴담을 학습했습니다. 셸리는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과 릴레이 방식으로 공포 글을 씁니다. 셸리가 한 두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이를 본 트위터 유저가 이 문장을 읽고 글을 씁니다. 이후 셸리가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식입니다.
 
캐나다의 소설가 얀 마텔은 소설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맨 부커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상소감을 통해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 소설가를 넘어서는 인공지능 소설가가 나타날까요? 
 
인류는 예술의 정점에 서기 위해 수년 또는 수십 년간 노력해왔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이 미술, 조각, 수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친 천재도 있었지만 대개 한 분야에 특화된 예술가들이 존재했습니다.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우리는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도 잘 만들도 소설도 잘 쓰는 다방면에 걸친 천재 인공지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두고 예술가라고 칭할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지만 결국 우리가 풀어내야 할 숙제입니다. 4차 산업으로 예술계에 펼쳐질 지각 변동을 우리는 곧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

◇이상미 대표는 프랑스 정부 산하 문화 통신부로부터 ‘프랑스 문화 자산 및 문화 서비스 전문가’ 자격증을 외국인 최초로 수석으로 2010년에 취득했다. 파리 현대 미술 갤러리 및 드루오 경매회사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서래마을에 있는 이상아트 스페이스에서 회화, 설치, 조각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전시와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 본 칼럼은 이데일리에 <이상미가 전하는 '4차 산업과 예술'>으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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