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탑

요새·궁전·감옥·처형장·무기고·왕실 보물 저장고…

대영제국 1000년 영광·오욕 ‘오롯이’

[국방일보 기획칼럼 -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

<3> 런던탑

요새·궁전·감옥·처형장·무기고·왕실 보물 저장고…
대영제국 1000년 영광·오욕 ‘오롯이’

<3> 런던탑

윌리엄 1세 잉글랜드 정복 후 1066년 요새로 축조
백년전쟁 당시 수많은 프랑스 귀족 포로들 수감
제2차 세계대전 독일 대공습으로 큰 피해 입기도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수도 런던은 문화의 중심지로 보존대상 건축물이 3만5000여 개나 된다. 이 중 세계 전쟁사를 대변하는 주요한 건축물이 있다. 바로 템스 강 북쪽에 위치한 런던탑이다. 화이트 타워와 블러디 타워, 주얼리 하우스 세 곳으로 나뉜 10개의 탑으로 구성된 런던탑은 11세기 처음 세워진 이래 요새와 감옥, 처형장, 무기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런던탑은 노르망디 공작이자 정복왕으로 불린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인 1066년에 요새로 축조됐다. 이후 12~13세기를 거치면서 리처드 1세와 헨리 3세,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증축돼 13세기 후반 무렵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다양한 크기의 탑과 탑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이중 성벽을 쌓았고 깊은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등을 만들었다. 1264년 헨리 3세는 귀족들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자 런던탑을 발판 삼아 1265년 이브셤 전투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15세기 장미전쟁 역사 고스란히

15세기 런던탑은 장미전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장미전쟁은 붉은 장미를 표시로 삼은 랭커스터 왕가와 흰 장미를 표시로 삼은 요크 왕가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다. 1455년부터 1485년까지 무려 30년간 일어났다.

장미전쟁 동안 런던탑은 대포를 동원한 공성전(성과 요새를 점령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의 장소가 됐다. 런던탑 역시 포격을 위한 총안(총을 내쏠 수 있도록 뚫어놓은 구멍)이 설치되기도 했다. 런던탑은 포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으나 함락되지 않다가 노샘프턴 전투에서 헨리 6세가 요크가에 잡힌 뒤에야 항복하면서 끝난다.

승리한 요크가에서 에드워드 4세가 왕위를 잇고 헨리 6세는 런던탑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이후 에드워드 4세가 10여 년간의 통치 후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겨우 12세의 나이였던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은 1483년 즉위하자마자 두 달 만에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1674년 런던탑 화이트 타워의 계단을 보수하다 두 아이의 유골이 담긴 상자를 발견했는데 두 형제의 유골로 추정된다. 결국 장미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보스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가 전사해 튜더 왕조가 열리고 헨리 7세가 즉위하면서 장미전쟁은 역사에서 그 막을 내린다.

감옥이자 처형장

런던탑은 헨리 1세에 의해 런던탑에 투옥된 더럼의 주교 라널프 플람바드 이후 주로 고위층 인사나 중요 인물만 수용하는 감옥이자 처형장이 됐다. 이 중에는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도 여럿이다.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는 1406년 프랑스를 여행하다 납치돼 런던탑에 갇혔다. 헨리 5세가 백년전쟁을 일으킨 뒤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리하자 많은 프랑스 귀족 포로들을 런던탑에 수감했다. 프랑스 국왕의 조카였던 샤를 1세 도를레앙 공작은 이때 엄청난 액수의 몸값이 지불될 때까지 25년에 걸쳐 수감되기도 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11명의 독일 스파이가 런던탑에 감금돼 총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전쟁포로들이 잠시 감금됐다. 그중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지도자대리였던 루돌프 헤스도 있었다. 헤스는 1941년 5월 10일 화평안을 제안한다는 이유로 직접 비행기를 몰고 영국으로 건너왔다가 체포돼 4일 동안 런던탑에 구금됐다. 런던탑에서 마지막으로 처형된 사람은 독일 간첩 요제프 야코브즈로 1941년 8월 15일 총살됐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폭격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런던탑 역시 독일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다. 영국 대공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9월 7일에서 1941년 5월 21일 사이에 독일 공군이 영국에 가한 일련의 폭격 및 공습이다. 역사상 최초의 ‘공군의 전쟁’으로 꼽힌다.

독일의 런던 대공습은 정복왕 윌리엄에게 침략당한 이래 영국 본토가 처음으로 전쟁 피해를 입는 순간이었다. 무려 4만3000여 명이 사망했고 100만여 명이 집을 잃었다. 267일간 런던은 71회의 대형 폭격을 경험했다. 이때 런던탑도 참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런던탑에는 오직 한 발의 폭탄이 해자에 떨어졌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40년 11월 23일의 영국 대공습으로 런던탑 안의 건물 몇 채가 파괴됐고 화이트 타워는 간발의 차이로 파괴를 면했다.

우리에게 빼빼로데이로 잘 알려진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다. 영국과 캐나다,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부터 전쟁 중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며 이날을 기념했다. 당시 참전국들의 ‘현충일’인 셈이다. 지난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 100주년을 기념해 영국연방 참전 사망자 수인 88만여 개의 양귀비꽃이 런던탑 남문에 장식되기도 했다. 천 년의 세월을 견뎌 낸 런던탑은 수많은 전쟁사를 간직하며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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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국방일보 2019년 7월 15일 월요일 기획 15면에 게재됐습니다.)

​원문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90715/1/BBSMSTR_000000100082/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