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가 전하는 아트테크 6편

6편 예술가, NFT로 뛰어들다

이상미가 전하는 아트테크

백남준(1932~2006)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다. 그의 작품은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 운동에 기반한다. 옷을 자르거나 관객들에게 물을 뿌리는 실험적인 공연이나 도살장에서 가져온 황소의 머리를 전시장 현관에 매달아 두는 전시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백남준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실 도쿄대에서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하러 간 백남준은 뮌헨대와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 쾰른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했다. 그런 백남준이 현대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예술가로서의 그가 가진 기질과 창의성 뿐만은 아니었다. 백남준의 아내이자 현대미술가인 구보타 시게코의 든든한 조력이 있었기에 백남준의 예술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인 구보타 시게코가 백남준이 착안한 개념과 아이디어를 조형미가 있는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

만약 현재 백남준이 살아있다면 그 누구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예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였지만 당시 기술로는 영상 작품의 복제를 막을 수 없었고, 작품 원작에 대한 보증을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반영한 걸까.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2021년 6월 진행한 온라인 경매에서 백남준의 영상 작품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의 오프닝 38초가 반복되는 NFT 작품을 추정가 10만∼20만 달러(약 1억1,000만∼2억2,000만 원)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1973년 미국 방송국 WNET를 통해 처음 방영되어, 테이트 모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전시됐다.

아쉽게도 낙찰은 되지 않았다. 백남준의 장조카이자 저작권자인 켄 하쿠타는 “백남준이 살아있다면 갤러리 등과 같은 전통적인 공간 밖에서 작업하고 판매하는 기회에 대해 긍정적이었을 것이다. 그의 유산을 기념하고 후대에 영감을 주는 이번 작품을 다시 선보이게 돼 영광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NFT로 뛰어든 한국의 예술가들에는 누가 있을까?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1932~2006). (사진=백남준아트센터)

◇ 7만 이더(약 2,200억 원)에 아트바젤홍콩에 NFT작품 내놓은 코디 최

NFT가 열어놓은 신세계로 진출한 한국 작가들의 소식이 연일 들려온다. 이름도 생소한 무명작가도 있지만,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도 적지 않다. 그중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의 전시 경력이 있는 코디최도 NFT 미술시장에 가세했다. 그는 1980년대에 고려대 사회학과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아트센터디자인대학 미술학을 수학했다. 코디최는 이종의 문화가 충돌해 탄생하는 제3의 문화현상에 주목한 작업을 하고 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대문화전문 비평서 ’20세기 문화 지형도‘(2006), ’동시대 문화 지형도‘(2010)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코디최는 1999년 작업한 자신의 첫 데이터베이스(DB) 페인팅 연작 ’애니멀 토템’(Animal Totem)‘ 중 1점을 NFT로 제작한 후 작품 가격 7만 이더(약 1,750억 원)에 책정해 올해 아트바젤홍콩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동물원에 다녀온 어린 아들이 컴퓨터로 호랑이와 정글 이미지 파일 등을 붙이는 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NFT 거래 플랫폼인 오픈시에 올라와 있으나 팔리지 않았다. 4만 2,329이더리움에 낙찰된 비플의 NFT 작품 ‘매일 :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보다 1.5배 더 높은 가격이다. 높은 가격이 문제였던 걸까? 만약 판매가 되었다면 전 세계가 놀랄 일이었다.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가 1위에 해당하는 제프 쿤스의 ‘토끼‘(2019) 판매가인 9,107만 5천 달러(1,082억 5천만 원)보다도 600억 원 더 높은 가격이었으니까. 코디최와 그의 화랑인 PKM갤러리는 7만 이더리움이라는 가격 책정에 대해 디지털 아트의 선구자이자 원조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한 과열된 NFT 미술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시도였다고도 했다. NFT 미술시장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메시지였을까? 각자의 판단으로 맡겨 두고 싶다.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 (사진=크리스티)

◇ ’미스터 미상‘ 처음 듣는다고? NFT 미술시장에서는 유명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로 활동 중인 디지털 아티스트 ’미스터 미상‘은 국내 예술가로는 첫 해외 진출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올해 상반기 NFT 아트 플랫폼 슈퍼레어에서 ’08. Packed subway‘ 작품은 120이더리움(한화 약 3억 740만 원), ’11. Money Factory‘ 작품은 200이더(한화 약 4억 9천만 원)에 판매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인기에 힘들어 미스터 미상의 작품 ’크레바스 01.‘(총 1억 원 규모)는 2021년 7월 29일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 계열사 그라운드X가 출시한 카카오톡 암호화폐 지갑 ‘클립’에서 판매 시작 27분 만에 완판됐다. 개당 100클레이(약 11만원)로 준비된 999개가 순식간에 매진된 것이다.

그의 작가명인 ’미상‘은 말 그대로 ’작자 미상‘의 뜻으로 2015년부터 연재한 ’Mordern life is rubbish‘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브랜딩이 필요했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작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성은 인정받았기에 미스터 미상의 작품은 NFT 미술시장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니프티게이트웨이의 작품 프로듀서인 메튜 페릭은 ”미스터 미상은 높은 수준의 그림체와 영상 제작 실력을 갖춘 뛰어난 아티스트이다. 미상 작가를 비롯해 앞으로 한국에서 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코디최가 1999년 작업한 데이터베이스(DB) 페인팅 연작 ‘애니멀 토템’(Animal Totem). (사진=PKM갤러리)

◇ 예술가들이 NFT 미술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배우이자 화가인 하정우도 자신의 NFT 작품을 판매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정우는 소속 화랑인 표갤러리에서 2021년 8월 1일 디지털 아트 판매 서비스인 ‘클립 드롭스’(Klip Drops)를 통해 2만 7000클레이(약 2,800만 원)에 출품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가 내놓은 유통 플랫폼이다. 7월 28일부터 시작해 9월 19일까지 국내 주요 아티스트 24명을 ‘24 퓨처 컬렉티브’로 선정해 오픈 특별전이 열렸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왜 NFT 미술시장으로 뛰어드는 걸까? 예술가들에게 NFT 미술시장은 신세계이기 때문이다. 기존 미술시장은 소위 팔리는 작가들의 작품에만 집중돼 있어 어지간한 작가의 작품은 잘 팔리지 않는다. 대중적인 인기나 작품성이 높으면 구매한다고? 한국의 미술시장도 확대되긴 했지만, 주변에서 작품을 구매한다는 이들은 많지가 않다. 그렇다면 활로를 전 세계로 넓혀야 한다. 물론 해외 미술시장인 영국, 미국, 프랑스을 노릴 수 있다. 헌데 그게 쉽지는 않다. 해외 아트페어나 전시는 아무나 갈 수가 없다. 자격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은 모두 다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이를 해결하는 것이 온라인 시장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원본성과 희소성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NFT 기술이 등장했기에 예술가들은 NFT 미술시장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NFT마켓에 아무 작품이나 올린다고 해서 판매가 쉬이 되는 건 아니다. ‘별’ 볼일 없이 작업실이나 방구석 어딘가에서 고이 잠들어 있었던 작품을 꺼내어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민팅’한다고, ‘별’ 볼일이 생길까. NFT마켓에 작품을 올려놓고 가만히 앉아서 판매되길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트페어에서 오가는 컬렉터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분주히 나서는 것처럼 SNS나 커뮤니티를 통한 홍보 활동이 필수로 요구된다. 게다가 전 세계에 있는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자신의 작품 홍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어 능력도 요구된다. 신세계에는 또 다른 법과 체계가 있으니 NFT 미술시장에 적응하기 위해서 이에 대한 기술을 익히고 배워야 한다.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다 35년 만인 1984년 6월 귀국한 백남준은 전위 예술에 대해 설명하며 “예술은 (고등)사기이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지금으로부터 약 38년 전에 한 말이지만 현재도 유효하다. 뻔하고, 식상한 것은 예술의 반열에 들 수 없다.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드러내야 비로소 예술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NFT는 새로운 발판이 돼 예술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NFT를 하는 모든 예술가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계 또한 엄연한 경쟁 사회이고, 미술시장은 엄연한 자본의 가치로 인해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NFT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 이들이 앞으로의 미술시장을 선도한다면,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는...
2010년 프랑스 정부 산하 문화통신부에서 프랑스 문화재 감정과 문화재 서비스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시기획사인 이상아트(주)의 대표이사이자 유럽 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예술감독, 전시기획자, 칼럼니스트, 강연자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본 칼럼은 이데일리에 [이상미가 전하는 아트테크]으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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